사도신경 강해 (7) -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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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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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4중 비하(낮아지심)
(1) 동정녀 탄생
(2) 고난 받으심
(3) 죽으심
(4) 장사되심
그리스도의 4중 승귀(높아지심)
(1) 부활
(2) 승천
(3) 우좌정(하나님 우편)
(4) 재림(심판)
지난 주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신분이 높아지시는 높아지심의 신앙고백을 보게 됩니다.
그 높아지심의 첫번째 고백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의 신앙과 가장 차별되는 지점입니다.
역사 속 그 어떤 종교도 누군가의 빈 무덤을 얘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완전히 다시 살아나셔서 장사되었던 무덤이 빈 무덤이 되었다고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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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엄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계세요. 그분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만약 기독교를 공격하는 자가 된다면, 집요하게 부활에 대해서 공격할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 바로 부활 신앙인데,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로서 존재 가치가 흔들리게 되기 때문인 것이죠.
우리 신앙의 척추가 바로 부활입니다. 척추가 무너지면 인간은 거동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의 척추인 부활이 무너지면, 기독교는 거동할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 주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창조 후 안식하신 것이 구약의 안식일이었고,
신약에 오면서 안식일의 정신으로 예배드리는 날이 주일인데 왜 안식일과 주일의 요일이 다릅니까?
주일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안식일의 정신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주 부활을 기념하는 자들입니다.
오늘은 이 부활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을 가지고 함께 은혜 나누려고 합니다.
본론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알기 이전에 현대의 부활에 대한 많은 공격이나 질문을 살펴보려합니다.
부활은 우리가 주변에서 경험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활은 아직까지도 과학적으로 알아내지 못한 즉 불가능한(왜냐하면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알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기 때문에)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고백은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거나, 혹은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다른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우리 주변에 보이는 많은 비기독교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스탠스죠.
그런데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그럼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부활을 어떤 생명이 부여된 상징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리스도적 정신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부활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부활의 역사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1) 도적설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며 반론을 제기한 사례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로 “도적설”입니다.
도적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다른 곳에 유기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는 반론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성경 안에서 이런 도적설을 설명하는부분이 있습니다.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성경은 실제로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 그런 도둑설을 유대인들이 돈으로 매수하여 군인들에게 도둑설을 퍼뜨렸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 문헌을 보면 2세기 이교철학자 셀수스가 이러한 도적설의 영향을 받아 부활을 설명하고, 저스틴 마터라는 신학자는 2세기 중반에 이러한 도적설이 유대인 가운데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도적설에 대해 마태는 직접 반박하고 있습니다.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마태는 유대인들이 서로 의논하여 군병들을 많은 돈으로 매수하고, 그들에게 시체를 도둑질한 도둑설을 거짓 소문으로 퍼뜨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초 성경이 기록될 당시 이러한 상황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당시 실제로 일어난 예수의 부활 사건 앞에 무능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기절설
둘째로 기절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거의 죽음 직전에서 기절하셨다가 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분명하게 죽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시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소리치십니다. 그리고는 영혼이 떠나십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을 때 백부장을 불러 예수가 죽은지 오래되었는지 묻고, 알아본 후 시체를 내어줍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죽으신 후 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옆구리로 찌릅니다.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것은 분명히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묻히신 돌 무덤의 돌을 누가 옮겼는지 기절설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큰 돌을 천사가 옮겼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절한 예수님이 옮기신 것이 아니라, 천사가 옮긴 후에는 이미 예수님이 안 계셨다는거죠.
그리고 그 무덤 앞은 이미 봉해진 무덤으로 파수꾼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돌을 옮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오시게 하기 위하여 옮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옮긴 것이었습니다.
(3) 환상설
다음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간절히 보고싶어서 일종의 환상을 보았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말하고 있씁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순히 환상이 아니라, 나타내시어서 자신의 몸을 보여주시고, 만지게 하시고,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을 500명 앞에서 나타내십니다.
한 두명이 함께 환상을 볼 수 있다고 칩시다. 500명이 동시에 환상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죠.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반론들이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을 인지하고, 반론을 제기하기 위하여 부활의 의미를 약화하려고 합니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닌 학자들이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거나 혹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합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든, 신앙적으로든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2. 부활의 의미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즉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줄까요?
우리는 부활에 대해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 완전히 만족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모든 인류의 죄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 사역이 다 만족된 것입니다.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둘째로, 성경은 중생을 부활의 능력에서 비롯한 결과로 묘사합니다.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바울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울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능력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즉 성도들이 구원에 있어 거듭남, 중생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은 종말에 누리게 될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자체가 종말론적 사건이며, 종말에 있을 모든 신자의 부활의 첫 시작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한 육체로 부활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릴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면서 그 예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용)
1. 부활은 소망이다.
썩은 소망을 버리고 영원한 소망, 부활의 소망을 바라자.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의 소망을 영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무덤에 계속 남아있는다ㅡㄴ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속한 자들처럼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부활을 무덤 안에 쳐박아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